여자가 되고 싶은 (정확하게, 성전환 수술이 하고싶은) 오동구와,
주변 연기자들의 연기 모두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영화.
딱딱 맞아 떨어지는 춤 동작(최근 써니텐 광고) 만큼이나 멋진 씨름 장면,
동구친구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하고싶은일을 찾아 좌충우돌 생활하는 모습,
그리고 오동구가 남자 대 남자로(?) 아버지에게 맞는 충격적인 장면 까지도
지나고나면 다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성전환 수술을 하기 위해,
우승을하면 장함금을 주는 씨름을 하게 된다는 약간의 억지스러운 발상은,
상반신을 드러내고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나, 너때문에 조금 헤깔려'라는 대사와 함께
아이러니컬하지만 자연스럽게 감독의 의도로 이해되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영화의 최대 하일라이트인,
진부하지 않은 오동구의 씨름판 마지막 장면.
다들 보고 즐기시라~!!
그나저나 영화도 영화지만,
운좋게 이 영화 무대인사에 맞춰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보다 대단한 우리 동구, 류덕환이가 살을 무려 25Kg이나 빼서 우리 앞에 선 것이다... 뜨어~!!
덕분에 살을 빼야한다는 압박은 계속되었다. 헐.
문세윤의 깔끔한 사회와 성대모사, 개그를 감상하며 잠시 웃찾사 방청객이 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하고,
비록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기념품을 받아가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정말 좋은 배우들을 만나게 해준 괜찮은 영화였다.
별점 : ★★★★☆ 4.5점
영화 외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문득 하리수씨는 수술비를 마련하기위해 뭔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현실에선 씨름보다 더 힘든일도 해야하지 않았을까?
영화에서보다 더 큰 외로움과 더 큰 아픔을 느껴야 했을 것이고.
그리고 문득,
영국에 있을 때 만난 몇 명의 게이친구들이 생각 나기도 했다.
여자가 되고싶은 남자,
혹은 자신을 여자라고 알고 있는 남자와는 또 다른,
그런 성적 소수자들 모두를,
무시가 아닌 이해로 감싸줘야할 필요성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바이섹슈얼은 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부디 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이 영화를 보기를~
덧] 초난강. 와방웃김.
극장에 가기 전에 고민했다. 제천국에음악영화제에 빡세게 다녀와서 피곤했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보러 꼭 가야 되나, 잠깐 망설였다. 분명히 삼류 코미디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윤식이 까메오로 나온다는 거 말고는 신인 감독에 출연 배우들도 전부 이름도 모르는 신인 배우들 뿐이었다. 더구나 무더웠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를 뚫고 시사회가 열리는 용산까지 가야 되나, 망설였다.
한국 영화 시사회는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 인사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20분 지나서부터 본 영화가 시작된다. 난 조금 늦었다. 시사회 표를 받아서 극장에 들어가니까 무대인사가 진행 중이었다. 감독과 배우들의 인사말을 들었지만 꽃분홍 셔츠를 입은 백윤식씨를 제외하고는 생경한 얼굴들 뿐이었다. 좌석도 드문 드문 빈 자리가 꽤 많이 보였다. 배급 기자 시사회를 같이 하는 데도 이 정도였다. 잘되는 영화는 극장 5,6개를 잡아서 한꺼번에 시사를 하지만 이 영화는 용산 CGV 중에서도 좌석이 제일 많은 메인 관이 아니라 작은 극장에서 배급 기자 시사회를 한꺼번에 진행하고 있었따. 그것도 많은 빈 자리를 보인 채.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직업을 갖고 있으면, 그리고 지금까지 본 영화가 1만 편이 넘으면, 과장이 아니라, 첫 화면만 봐도 이 영화의 완성도가 어느 레벨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첫 화면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어두운 방안에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년. 화면 좌측에 나이트클럽용 조명들이 내려오면서 돌아가고 서서히 페이드 아웃된다.
나는 조금 긴장했다. 어쩌면 괜찮을 지도 몰라.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서서히 빠져 들기 시작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려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오동구(류덕환 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김윤석 분)는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지만 지금은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날보다 술주정뱅이로 공치는 날이 더 많고,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서 집을 나간 어머니(이상아 분)는 놀이공원에서 일하고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성정체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뚱보 소년 오동구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그가 갈등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여자가 되기 위해 수술비를 모은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인천 부두에서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나르는 동구의 모습은 이미 수업이 시작한 학교의 울타리 사이로 몰래 들어간 동구는 단짝 종만의 도움으로 선생님에게는 화장실에 다녀온 것처럼 위장하는 데 성공한다.
학교 울타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동구가 거꾸로 엎어 놓은 빈 화분을 들쳐서 화장지를 꺼내는 동작과, 교실에서 동구의 단짝 종만이가 동구의 빈 책상 위에 책을 펼치고 연필까지 완벽하게 셋팅하는 모습의 연결동작은, [천하장사 마돈나]가 뚱보 소년의 여성되기라는 낯설고 관념적인 소재를 어떻게 살아 꿈틀거리는 영화로 탈바꿈 시켰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여자가 되고 싶은 뚱보 소년 동구를 중심으로 그의 학교생활과 가정생활 양대 축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감독의 시선은 세밀하게 살아 움직인다. 학교에서 동구는 왕따다. 다른 학생들은 여자아이같은 동구의 등에 낙서를 써붙이고 놀리지만 단짝 종만은 [강호동처럼 열심히 씨름을 해서 유명한 개그맨이 되겠다]고 말하다가 다음 날은 힙합 가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춤을 추기도 한다. 동구가 짝사랑하는 일어 선생님(초난강 분)과의 관계도 넘치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씨름대회 우승자에게는 장학금 500만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오동구는 씨름부에 들어간다. 자신을 여자로 만들 수 있는 수술비가 그만큼 모자라기 때문이다. 누가 500만원 준다면 그 사람의 오줌에 똥을 말아 먹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동구의 수술에 대한 집념이 그를 씨름부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씨름부 내의 구성인원들도 맛갈나게 표현되어 있다. 3학년 주장(이언 분)은 동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다른 부원들 덩치 트리오는, 덩치는 천하장사급이지만 실력은 안따라주는 선수같지 않은 선수들이다. 그리고 씨름 감독(백윤식 분)은 도대체 정체 불명이다. 틈만 나면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는 그러나 선수들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다.
또 동구의 가정생활은 문제아 아버지, 이혼하고 집을 나간 어머니, 그리고 동생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핵심은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여고시절 아버지를 만나 동구를 임신을 하게 돠면서 학교를 그만 둔 어머니는 이혼 후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늘 소주병을 끼고 살며 툭 하면 아이들을 폭행한다. [가드 올리고 원 투]하면서 아이들에게 주먹을 날리는 아버지는 동구가 여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형제 사이도 아니고 연인 사이도 아니라는 이해영 이해준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커밍아웃] 각본을 쓰며 함께 공동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품행제로]의 시나리오를 썼고 [신라의 달밤] 원안을 내놓앗으며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각색했다. 공동 작가 출신의 공동 감독 데뷔 자체도 한국 영화에서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들의 영화는 캐릭터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세밀한 구성과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 이야기의 힘으로 절제된 감성적 미학과 그것이 형성하는 위대한 폭발을 보여준다.
균형을 조금만 잃어도 삼류 코미디로 전락할 수 있는 소재의 아슬아슬함을 이겨낸 것은, 결국 뛰어난 각본과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실제보다 25kg을 살을 찌워서 동구역을 소화한 류덕환은 진정성으로 무장해서 관객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오동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아버지 역의 김윤석과 어머니 역의 이상아도, 자칫 오동구의 학교생활과 씨름부 이야기로 흘러갈 것 같은 이야기를 가정생활에 무게를 줄 수 있는 인상 깊은 연기로 극복해냈다.
의심할 바 없이, [천하장사 마돈나]는 올해 개봉된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 중의 하나이다. 올해의 화제작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김기덕 감독의 [시간]도 아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어느 단점들을 뛰어 넘으며 또 한사람의 완성도 높은 작가가 출현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뛰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