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한테 만들어 준 노래가 있다며? 그거 들려줘"
불 끄고 잠자리에 든 큰아들이 팔베개하고 옆에 누워서는 하는 말.
"잉? 그건 어떻게 알았어?"
무슨영문인고 하니 엄마랑 낮에 장래희망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자기는 가수도 하고 싶고 과학자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아빠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는 아빠의 옛 추억을 아들에게 이야기했던 것.
"아빠는 왜 복면가왕에 안 나가? 아빠가 복면가왕에 나오면 좋겠어."
복면가왕의 애청자인 아들은 아빠가 TV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눈치다.
그 와중에 둘째는,
"안돼. TV에 들어갔다가 못 나오면 어떻게. 아빠가 쪼그매지잖아."하며 운다. 귀여운 녀석.
"이 노래가 엄마한테 만들어 줬던 노래야."
"이거 아빠 목소리야? 아빠 목소리 아닌 것 같은데? 아빠, 노래 불러봐"
"아빠가 말하는 목소리랑 노래하는 목소리가 달라"
"또 다른 노래 있어?"
자야 하는 시간에 자꾸 노래 틀어준다고 핀잔을 주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다른 곡들을 몇 곡 들려 줘본다.
"이 노래가 조금씩 조금씩이야? 조금씩 조금씩~"
흥얼거리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나 또한 오래간만에 듣는 내 노래에 흠뻑 빠져 있을 즈음, 또 다음 곡이 흘러나온다.
이 노래도 곧잘 따라 부르기에, 기쁜 마음으로 듣고 있는데
아빠 놀리기에 심취한 아들내미가 점점 노래를
"하~얀 운똥짱 위에 짝은 싸랑"
"쮜나가 뻐린 까씀아린 씨간들이..."하며 격렬하게 따라 부르더니, 아빠의 발음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아빠의 사투리를 곧잘 놀리곤 하던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빠, 복면가왕 나가지 마. 나가면 안 되겠다"
"왜? 아빠 왜 나가면 안 돼?"
"1라운드에서 떨어지겠어. 나가지 마!"
복면가왕을 한 주도 빼놓지 않고 본 덕에 듣는 귀가 좋아진 이유도 있을 것이고,
또 물론 아빠가 노래를 격하게 못 하는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충격이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를 디스하는 아들이라니.
엄마는 그 와중에 배꼽 잡고 웃고, 난리 났다 난리 났어.
아.... 좋은 노래 많은데. 명예회복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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