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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다반사 ]/주저리 주저리

후배를 대하는 일의 어려움

지금부터 써내려갈 내용은 해동고등학교 컴퓨터동아리 NEWWAVE에서의 3년 중 후배들과 함께한 2년, 한국해양대학교 통기타동아리 파도소리에서의 3년(혹은 그 이상), 부산대학교 신경회로망 및 실세계응용연구실에서의 4년 동안 매번 봉착하게 된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특정 인물에 대한 원망이나 질타가 아님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하는 꾸지람이며 위로가 될 수 있겠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전산부에서 컴퓨터음악(MIDI)을 담당했었다. 학예전 준비때는 3D 동영상에 들어갈 음악을 작곡하고, 학예전 동안은 MIDI 세미나라든지 작품 소개를 주로 하고 짬나는 시간에는 전시회장 음악을 관리하기도 했다. 1년이 지나고 후배가 들어오면서, 그리고 MIDI 라는 분야를 하게 될 직속후배들이 생기면서 그들에게 내가 하는 일들을 가르쳐주고 또 나누어주기도 했다.
의욕에 불타는 나는, 아이들에게 기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음악시간에 배운 모든 지식을 조합해 화성악부터 이야기를 하고, 컴퓨터 음악 개론이니 음향이니 하는 이야기들도 주절주절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악보찍기 과제를 아이들에게 내주게 된다.
단시간에 작곡을 해낼거라는 기대감 같은건 애초에 없었다. 다만 그들의 열정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목마름을 내가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얻은 대답은 '재미없다', '어려워요'였다. 악보를 보고 찍는 것 조차도 그들에겐 노동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들에게 해보지도 않고 왜 목표를 접느냐는둥 너네들이 맡은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보긴 해야하지 않느냐는둥의 핀잔세례를 퍼부었고, 심지어는 나도 하는데 너네는 왜 못하냐는 식의 나를 깍아내리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한참후에야 그 발언이 정작 듣는사람에겐 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덕분에 고등학교 후배들 중에 컴퓨터 음악을 하는 후배는 없다. 물론 그때 그시절의 재미없는 취미 혹은 특기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고 있을리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학교 시절.
파도소리는 내 대학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절 동안 내 생활의 전부를 차지한 동아리이다. 나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덕분에 같이 생활한 사람은 거의다 선배들이었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벌써 8기수 차이나는 후배들이 신입생환영회를 한다고 한다. -_-;;
동아리 시절에도 그랬다. 동아리시절 포지션은 드럼이었던 덕에 열심히 후배들에게 드럼을 가르쳐 주지만, 정작 애들은 재미를 못느끼는 것 같았다.
드럼을 치고 싶어서 배우겠다고 했잖아. 나 어디가서 드럼 한 번 배운적 없단말이야. 자신감을 가져. 연습만이 살길이다. 역시 내 주장은 이런식이었다. 그리고 뭔가 한 두개의 쉬운 과제를 던져주고 그들이 그 과제에 대한 노력조차 안할 즈음(내 눈에 그렇다는 말이지만)이면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었던 것 같다.
어느 시간 이후로 그들 역시 선배가 되었고, 시간은 그들에게 경험을 주었으며, 그들과 함께하는 또 다른 후배들은 잘 어울려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멋진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주변인인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득 어렸을적 동생 형모와의 일화가 생각이 난다.
어렸을적부터 형모는 나보다 공부를 잘했다. 가끔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지만, 정작 질문 내용은 나역시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수학문제를 가져왔는데, 사실 나는 수학을 노가다로 푸는 수준이지 공식을 외운다거나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재주는 부족했다. (지금까지도) 그래서 의욕에 넘쳐 설명을 해주려 하다가도 내가 설명을 잘 못하고는 '바보야'라고 동생을 꾸짖곤 했다. (그때 형모는 그것때문에 '바보야'라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


나는 그렇다. 뭔가를 풀어가는 능력은 탁월한 것 같은데, 그것을 남과 공유하는데는 서툴다. 그것은 그 해법이 철저히 분석적이질 못하고 두리뭉실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며 어쩌면 그 헛점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찌질한 자존심 때문이거나 애써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남과 공유하고싶지 않은 필요 없는 욕심일수도 있으며, 또는 애초에 그 해법 따위를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그리고 그것이 후배일 때, 그것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나만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고 그들에게 더이상 뭔가가 가르쳐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 그것이 결국 나를 깍아먹는 일이고 내가 힘든 일인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되는건 순전히 나의 잘못인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혹자는 자기 잘못을 아는 일이 가장 값진 일이라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나는 아는게 아무것도 없으니 너네들은 그정도까지만 따라오다가 스스로 열정이 없어서 포기한 것 처럼 보여줘라는 자조섞인 주문이 섞여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어느때 부터인가, 후배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 후배들에게는 이런 방법으로 저 후배들에게는 저런 방법으로 각자의 개성에 맞는 일의 습득 방식을 알게 하고 각자들의 수준에 맞는 일을 주는 것으로 내 단점들을 보완해 나갔다. 가끔은 '선배 왜 저는 이거 안가르쳐 주셨어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 전보다는 훨씬 후배들 대하기가 수월해진 나를 느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대학원에 들어와서도 그런 고민은 계속 되었다. 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준 선배 한사람 덕분에 학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체계도 잡았고, 연구실 생활이라든지 연구실에서의 일들에 대한 해법도 잘 찾는편이다. 그런데 유독 후배들과의 일들은 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그들을 동생으로 대할때는 즐겁지만 후배로 대할때면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 오를정도로 맘이 상하기도 한다.
되짚어보면 고기 낚는 법을 배울 때, 나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이틀만에 할 일을 밤을 새워 하루만에 하고, 남들보다 일찍 출근, 남들보다 늦게 퇴근, 부지런해지자고 다짐의 다짐을 했고, 행여나 내 일을 다른사람이 채갈까 전전긍긍하며, 눈치보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해나갔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타대 출신 학생이라는 굴레를 탈피하고 싶은 강박관념 같은 것에서 비롯 되었을 수도 있고, 일에 미치는 것이 좋았다고도 말하고 싶다.


미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또한 그들을 어떻게 미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나의 몫이다. 선배들에게서 받은 것들, 내 스스로 깨닳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줄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 결국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의 선배들이 나에게 느끼는 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내 반성과 함께 긴 글을 살포시 마무리한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다. 배울것도 남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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